1. 스미스 이전의 경제사상
경제학은 스미스의 국부론의 출판과 더불어 탄생되었다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학문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출생 전에 오랫동안 잉태기가 있다. 이제 스미스 이전의 경제사조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경제학은 처음부터 그때그때의 정책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예컨대 신 구약성경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등은 모두 고리채를 비난하고 있다. 스미스 이전의 중상주의자들은 대개가 국왕의 정책자문관들이었다. 중상주의자들이 보호무역주의적 관세를 주장한 것도 이것이 나라의 번영을 가져오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1.1 중상주의 사조
중상주의자들이란 대체로 이 세계에 부(wealth)가 일정하게 주어진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부의 창조보다는 부의 이전에 관심을 두었다. 따라서 이들은 한 집단의 이득은 필연적으로 다른 집단의 손해라고 보는 공통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중상주의자들이란 이러한 경해를 가진 저술가들과 정치가들로 구성된 다양한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재화의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촉진하여 금의 유입을 가져오는 정책수단을 옹호하였다. 금의 유입이야말로 한 나라의 부의 증가이며, 한 나라의 부의 증가는 다른 나라의 부의 감소(즉, 금의 유출)에 의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중상주의자들은 결과적으로 부유한 상업계층의 이익을 대변했으며 노동계층을 단순히 저임금을 통하여 이윤을 획득할 수 있는 원천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저 임금을 이용하여 자기 나라의 수출품을 값싸게 만들어 수출하면 높은 이득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층을 이윤획득의 수단으로 보았던 것이다. 중상주의자들은 또한 제국주의적 활동이나 심지어 노예제도까지 옹호하였는데, 이것은 한계층의 富는 다른 계층의 손실이 있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입장 때문이었다.
수출초과, 즉 이른바 유리한 무역수지를 얻기 위해서는 국내산업을 외국경쟁으로부터 보호하고 수출산업에 보조금을 주고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일련의 직접적인 통제수단을 강구하기를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시장기능 대신에 정부의 직접개입으로 자원이 배분되었으며, 소비자로 하여금 가장 값싼 재화(이것이 수출상품일 경우가 많다)를 구입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무역수지를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노동자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의하여 일정한 직종에 배정되었다. 외국상품의 수입은 관세와 기타 차별조치로 말미암아 제한되었다.
요컨대, 중상주의 경제사상의 기본적 특색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노임억제, 식민지 경영, 노예제도의 옹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한 사람의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해야 한다고 하는 부의 경쟁적 개념을 들 수 있다.
둘째, 자급자족을 통한 금의 유출방지와 수출초과를 통한 금의 유입을 한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는 수단으로 보았다.
셋째, 소비자와 기업가들의 자유로운 구매나 투자 대신에 정부의 전반적인 계획과 통제를 주장하였다.
사실 중상주의적 개념은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재현되고 있다. 중상주의사상은 착취가 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보조를 계속 요구하거나 외국 또는 국내의 격심한 경쟁으로부터 자기들의 보호해 주기를 요구하는 기업인들과 노동조합들의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 후진국가를 막론하고 이와 같은 중상주의적 사고방식이 상황에 따라 계속 반복되고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1.2 중상주의자와 기타 사상가
스미스 당시의 유럽대륙에는 케네를 비롯하여 미라보, 리비에르, 튀르고 와 같은 중농주의자들의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은 프랑스의 계몽주의학파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토지의 생산성에 입각한 경제활동의 순환적 흐름을 강조하였다. 스미스 이전에 경제분석에 공헌한 사람들은 아직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아니고 대개가 철학자들이었다.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와 영국의 철학자 로크 등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화폐수량설과 비슷한 이론들을 제시하였다. 영국의 철학자 흄은 철학자요 사학자였으나 금본위제하에서 무역수지의 자동적인 조절을 설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화폐수량설을 완전무결하게 해명하였던 것이다. 즉, 금본위제하에서 금의 유입 유출은 가격 수준에 영향을 주며, 이는 나아가서 무역불균형을 시정하는 효과를 갖는다고 하는 경제이론을 내세워 경제학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다.
2. 고전경제학
2.1 스미스
18세기 후반 스미스가 창시한 고전경제학은 중상주의의 입장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출발한다. 1776년에 간행된 스미스 '국부론'은 국부(國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창하였다. 스미스나 그 이후의 고전경제학자들은 부를 금 또는 재화잔고와 같은 저량이 아니라 재화 및 용역의 흐름, 즉 오늘날의 소득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보았다. 또한 기존의 부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져오는 대신에 부 그 자체를 창조하는 수단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고전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제국주의와 노예제도는 기존의 부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빼앗으며, 부의 창조를 방해하므로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비록 특정 개인이나 일부계층이 제국주의나 노예제도로부터 이득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가 지닌 일련의 제한조치는 오히려 부의 생산을 감소시킨다고 보았다. 납세자들과 소비자들은 이 제도의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어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게 되며 외견상의 이득은 사실 환상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근년의 역사적인 연구에 의하면 식민지의 유지는 경제적으로 별로 이득이 없다고 하는 고전적 경제학의 입장을 잘 뒷받침하여 주고 있다. 아직도 과연 노예제도가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는가 하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최소한 미국의 경우 노예제도가 채택되었던 남부지역은 아직도 가난한 지역으로 남아 있으며 이 지역 가운데서 노예제도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상주의에 대한 스미스의 가장 핵심적인 반론은 재화 및 용역의 흐름이 어디(국내 또는 국외)에서 유래되었든 간에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곧 일반대중의 후생을 극대화한다는 입장이었다. 스미스는 자원의 배분은 정부의 통제보다는 개별시장에서 소비자와 투자자의 자유스러운 의사결정에 맡길 때에 더 효율적이 될 수 있다는 고전경제학의 원식을 내세웠다. 스미스가 정부에 의한 직접적인 간섭과 통제를 공박한 것은 정부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임금을 낮추고 소비자로 하여금 자기가 생산한 재화를 인위적으로 비싼 값으로 소비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스미스 당시로 보면 그가 주장한 '자유방임주의' 원칙은 오늘과 달리 현상에 대한 방어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공박이었던 것이다.
'국부론'은 정책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렸다. 정책원리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경제분석과 사회철학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스미스는 당시 중상주의적 전통과는 달리 부를 금이나 화폐잔고로 보지 않고 1인당 산출량의 흐름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을 그 나라의 전 인구로 보았다(중상주의는 국민의 개념을 상류계급에 국한시켰다).
스미스는 경제, 나아가서 사회일반을 상호제약적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는 체제라고 보았다. 그는 이체제 속에서 사람들의 직접적인 욕구와 노력은 그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각 소비자나 생산자가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개인의 개별적인 이익이 집계되어 사회적인 이익이 커진다는 뜻이 아니라 각 개인이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더라도 개별적 노력들이 상호작용하여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를 위한 최적의 자원배분이, 즉 사회 전체의 이익이 극대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애덤 스미스는 말하기를, "일반적으로 개인은 공공이익을 도모할 의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도모하는지조차도 모른다. 개인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자기가 당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달성하도록 이끌이러진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 가설을 증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국부론'에서 정부에 의한 통제가 가져오는 잘못들을 여러 가지 경험적인 사례들을 통하여 지적하였을 뿐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는 정부라 해도 직접적인 규제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해악을 가져온다는 점을 그 이전까지의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의 사례들을 통하여 명백히 했다. 비록 시장경제체제에 많은 결점과 부조리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정치권력에 의한 간섭이 이야말로 더 큰 해독을 준다고 지적하였다. 스미스는 말하기를 "민간인들로 하여금 자기의 자본을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를 지시하고자 하는 정치가야말로 가장 불필요한 일을 자기 자신이 짊어질 뿐만 아니라 어느 개인이나 어느 위원회 혹은 의회에도 안심하고 맡길 수 없는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이런 권력이 자기가 잘 통치할 수 있다고 과신하는 잘못된 교만심을 갖는 사람의 수중에 있게 되면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가 국가의 통제보다는 민간의 의사결정이 더 좋다고 본 이유는, 개인이야말로 자기 집안의 사정을 멀리 떨어져 있는 정부관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또한 기업인을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는 결코 보지 않았다. 기업인들은 상호경쟁에 의하여 제한을 받게 되며, 가능하면 이와 같은 경쟁을 회피하려고 한다고 보았다. 스미스는 말하기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친목이나 오락을 위하여 만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만나기만 하면 그들 간의 대화는 반드시 일반대중에 불리한 모의나 가격인상의 획책으로 끝나게 된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기업인들이 미치는 나쁜 영향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스미스가 가장 큰 우려를 표시하였던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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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경제사상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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