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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는가?

by 펜타힐즈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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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인 경제에서는 환율이 매우 불규칙하게 또는 급격하게 변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단기에도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부의 능력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외환시장에서 나타나는 투자자들이 갖는 미래기대환율에 대한 투기심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현재 환율을 유지하려고 노력해도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해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환율안정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은 다음 몇 가지의 측면을 아울러 강조한다. 
 첫째는 안정이 유지될 수 있는 균형환율을 결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부관리 몇 사람이 외환시장에 참여하는 수많은 투자자들보다 현명한 판단력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정부가 잘못 판단하면 환율은 오히려 더 불안정하게 된다. 환율은 국가 간의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의 차이에 따라 신축적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환율통제는 이와 같은 자연적 조절기능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정부의 환율안정화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간의 협조가 달성한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국내정책수립과 집행도 어려운 판에 외국과의 협약을 통해서 환율에 개입함으로써, 예컨대 국내 수출업자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환율안정화정책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국제환율제도의 변화
 이제 '관리된' 변동환율제가 도입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사실 고전적인 금본위제는 1914년 이전까지의 약 반세기 동안에만 널리 사용된 환율제도이다. 19세기 이전까지 영국에서는 금본위제보다는 은본위제가 더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 후에 금 및 은의 시장가격이 상승한 결과로 영국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금본위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최선진국인 영국을 모방하여 프랑스, 미국, 독일, 일본 등이 뒤이어 금본위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금본위제가 사용된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도 여러 가지 정책적 경제적 위기가 이 제도를 주기적으로 마비시켜 왔다. 전쟁, 새로운 금광의 발견 등은 물가 수준을 교란시켰다. 19세기 말엽부터는 금공급의 증가율이 재화산출량의 상승률을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가격 수준이 계속 하락하고 경기침체, 실업 및 사회적 불안 등이 지속되었다.
 독일과 일본이 금본위제를 채택함에 따라 세계 경제의 금공급량의 부족은 경기침체를 더욱 악화시켰으나 여러 가지 새로운 사태의 발전에 따라 최악의 사태를 면할 수가 있었다.
첫째, 금의 사용은 절약하는 새로운 금융기술, 즉 부분준비제도의 발달을 들수 있다. 은행들이 부분준비제도하에서 예금에 의한 신용창조를 할 수 있게 되자, 소득의 증가에 따른 금의 공급량의 비례적인 증가가 필요 없게 되었다.
둘째, 거의 모든 나라가 자기들이 발행한 지폐와 주화를 뒷받침하는 금보유를 100% 유지하지 않았다. 공급된 통화를 뒷받침하는 금보유액을 100%에서 25% 줄이면 통화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1/4에 해당하는 금만 채광하면 충분했다.
셋째, 여러나라, 특히 작은 나라들은 금을 거의 보유하지 않고 금본위제를 채택한 강대국의 화폐를 보유함으로써 각국의 화폐를 고정된 환율로 금과 교환할 수 있다. 작은 나라들이 이와 같은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를 채택함으로써 금에 대한 세계적 수요를 크게 감소시킬 수 있었다.
넷째, 19세기 말엽의 새로운 금광의 발견(남아프리카연방)과 새로운 제련법의 발달로 금의 공급을 증가시킬수 있었다.
이와 같이 금 사용의 절약과 금의 공급증가는 세계경제를 금본위제에 놓이게 할 수 있었고,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 이전까지 국제적인 디플레이션을 어느 정도까지 극복할 수 있었으나, 금본위제하에 세계경제는 대체로 국제유동성(international liquidity)의 부족을 야기하여 불필요한 국제적 경기침체를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이에 따른 국제정치적 불안은 세계의 금을 미국으로 대량 유입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의 달러가 국제무역 및 금융거래에서 기축통화(key currency)로 사용되었다. 각국의 정부와 개인 기업부문은 달러로 준비금을 보유하였다.
1944년에 열린 브레튼우즈 회담에서는 국제통화기금 과 세계은행을 설립했고, 그 헌장에서 각국 화폐의 평가를 금뿐만 아니라 미국달러를 기준으로 규정함으로써 달러는 각국 정부의 공시고정환율의 기준이 되는 이른바 중재통화(intervention currency)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달러를 기준으로 하는 공식 고정환율제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국내사정으로 1971년 8월에 늑슨 대통령은 달러를 금태환성(gold convertibility)을 포기하였다. 결국 미국은 브레튼우즈회담에서 체결된 달러의 금태환성(달러를 달러 이외의 다른 것, 즉 IMF의 공식준비금으로 사용되는 금, 기타 주요국의 통화로 바꾸어주는 것)을 유지하는 조약상의 의무를 포기한 것이다.
1971년 12월에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협회에서 주요 IMF 가맹국가들이 모여 잠정적인 협정을 체결하였다. 이 협정에서 10여 년간 지속된 달러 '과대평가'를 시정하기 위하여 독일의 마르크와 일본의 엔에 대한 미국의 달러의 가치를 크게 하락시켰고, 그 뒤의 10여 년 동안에 걸쳐 프랑스의 프랑, 영국의 파운드는 국내 인플레이션의 압력에 따라 가치하락을 지속하였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체로 자유스러운 변동환율제도가 적어도 선진국들 사이에서는 유지되어 왔다. 
1975년에 IMF는 금의 공식가격을 완전히 철폐하였다. 이에 따라 금본위제나 브레튼우즈의 공식 고정환율평가제가 모두 철폐 되었다. 대신에 1968년에 발의되어 1970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들어냈다. 특별인출권이란 IMF가맹국이 예금한 금액 이상으로 인출해 갈 수 있는 계정(account)을 각국에 할당해 주는 제도를 말하며, 이는 국내의 은행으로부터 당좌거래계정을 개설한 고객이 예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대출해 갈 수 있는 당좌대월제도와 흡사한 것이다. 특별인출권계정에서 사용되는 화폐단위의 가치를 어느 한두 나라의 통화로 표시하지 않고 16개 주요 국가의 통화(달러, 마르크, 파운드, 엔, 프랑, 리라 등)로 구성된 복합지수로 표시하였다. IMF의 특별인출권 제도는 금 대신 특별인출권(SDR)을 국제준비금을 평가하는 '종이금'(paper gold)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의 SDR에 대한 열의와는 달리 세계 주요 은행들이 이 '종이금'을 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SDR은 부차적인 중요성을 갖는 유동성 수단이 되고 말았다. 
1980년대 이후에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각국 정부가 환율의 무질서한 투기적 변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간헐적으로 개입하는 이른바 관리된 또는 순수하지 않은 관리변동환율제에서부터 순수한 변동환율제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리변동환율제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판단된다. 많은 선진국가들이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동안 석유수출국(OPEC)들에 의한 원유가격의 파동이 나탔다. 1973년 석유파동이 나타나기 직전 선진산업국가들은 대체로 25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수지흑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1974년에는 유류가격이 5배 정도 상승하여 선진산업국가들은 무려 375억 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발생시켰다. 이와 같은 돌발적인 사태에서 어떠한 제도도 견디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변동환율제는 비교적 잘 견디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달러를 비롯한 몇 개의 주요 통화의 큰 가치변동을 가져왔다. 또한 위급한 사태에 직면하여 정부개입 여러 번 나타나기도 하였다. 무역수지적자국의 정부들은 자기들의 대외준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해외로부터 차입도 하였으며, 조세 및 금리정책을 통하여 자본의 유출을 방지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제 간의 경제거래는 수요 공급의 법칙에 의하여 조절되는 완전한 변동환율제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어느 정도 '관리되는' 변동환율제하에서 운영되어 왔다.
 이 제도는 국내 경제정책을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는 데 따르는 제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해방시켜 준다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극히 불확실하고 상호의존적인 오늘날의 세계경제에 있어서 각 나라는 국제수지의 문제와 완전히 독립적으로 국내의 재정 금융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없지만, 현재의 덜 관리되는 변동환율제는 종전보다 국내경제정책의 운영에 더 큰 신축성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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